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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2 00:29:242887 
섬진(陝秦)의 약사(略史)
양승국
일반

진(秦)

중국 주(周)나라 때 제후국의 하나로 중국 최초로 통일을 완성한 국가(BC 221∼BC 207).


건국

BC 10세기 목축으로 이름이 나 있던 대구(大丘)의 비자(非子)는, 주나라 효왕(孝王)으로부터 진읍(秦邑:甘肅省 淸水縣)에 봉해져 서융(西戎)의 방위를 맡음으로써 진을 일으켰다. 그 후 진은 BC 8세기 초, 주나라가 견융(犬戎)의 공격을 받을 때 유왕(幽王)을 도왔고, BC 771년 평왕(平王)이 동쪽 낙읍(洛邑)으로 천도하였을 때에는 이를 호위한 공으로 산시성[陝西省]의 서부 지역을 맡아 제후(諸侯)로 승격하였다. 이가 양공(襄公)이다. 진나라는 BC 7세기의 무공(武公) 때부터 정복지를 현(縣)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현이라고 해도 그것은 명목일 뿐 실상은 읍과 다름이 없었다. 진나라는 간쑤성[甘肅省] 동부에서 웨이수이강[渭水] 연안을 따라 이동하다가 무공의 동생인 덕공(德公) 때에 옹성(雍城:陝西省 鳳翔縣)으로 이동하였다.



춘추시대의 진

BC 659년에 이르러 목공(穆公)은 백리해(百里奚)·건숙(蹇叔) 등을 등용해 정치를 혁신하고, 동쪽의 진(晉)나라와 싸워 하서(河西)의 땅을 빼앗았으며, 또한 서융 출신의 유여(由余)를 등용, 서방 이민족의 12국을 통합하고 영토를 1,000리에 이르도록 확장하여 서방의 패자(覇者)가 되자, 주나라 황실에서는 동고(銅鼓)를 하사해 경축하였다 한다. 그 후 하서 땅은 다시 진(晉)나라에 빼앗기는 등 진(秦)나라의 당면한 적은 진(晉)나라 였으므로 초(楚)나라와 손을 잡고 빈번히 진(晉)나라와 싸웠다. 진나라는 무공(武公)에서 목공(穆公) 때에 걸쳐 산시성 내의 작은 나라들을 병합하여 관중(關中)의 땅을 통일하였다.



전국시대의 진


헌공(獻公) 때에는 순사(殉死)의 습속을 금지하고 BC 383년에는 동녘에 역양성(陽城:陝西省 臨潼縣 북동)을 구축하여 동방으로의 진출 의지를 보여주었다. BC 362년 효공(孝公)이 왕위에 오르자 위(衛)나라 사람 상앙(商)을 등용해 내정을 개혁하였다. 즉 종래의 혈연 존중의 인사를 고쳐서 공적에 따른 신분제도를 설정하고, 군사조직과 토지제도를 혁신하여 조세(租稅)를 공평하게 했으며, 병농(兵農)을 일치시켰다. 이때부터 종래의 읍(邑)과는 그 성격이 다른 새로운 현(縣)이 생겼고, 군주권이 현내의 서민과 직결되었다. 이같이 하여 국력이 증강된 진나라는 위(魏)나라를 공략해 하서(河西)의 땅을 빼앗았기 때문에 위나라는 수도 안읍(安邑:山西省 解縣)에 불안을 느껴 대량(大梁:河南省 開封縣)으로 천도하였다. 진나라는 효공 때 수도를 셴양[咸陽]으로 옮겨 셴양은 진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로 남았다. 위나라의 대량 천도와 진나라의 국력 증강은 열국(列國)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열국은 연합전선을 펴 진나라를 관중(關中)의 땅에 봉쇄해 두려는 소진(蘇秦)의 이른바 ‘합종책(合縱策)’을 안출하였다. 이를 알게 된 진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은 공손연(公孫衍)으로 하여금 ‘합종책’을 분쇄하도록 명하고, 장의(張儀)로 하여금 각국이 진나라와 단독강화를 맺게 하는 이른바 ‘연횡(連衡)’을 성립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책동이 진행되고 있는 사이에 진은 파(巴)·촉(蜀), 즉 쓰촨성[四川省]을 장악하고, 초(楚)나라로부터는 한수[漢水]의 상류지방을 빼앗았다. 이로써 진나라는 어느 때든지 초나라를 공격할 수 있는 전략적인 거점을 확보하였다. 진나라의 혜문왕이 BC 325년부터 공(公) 대신 왕호를 사용하자, 이에 다른 열국의 군주들도 모두 왕호를 쓰게 되었다. 소양왕(昭襄王) 때에 이르러 청두[成都] 부근에 운하를 열고 쓰촨의 옥야(沃野)를 개발하는 한편, 진나라 장수 백기(白起)는 BC 278년에 대병력을 이끌고 초나라를 공격하여 수도 영(<呈+邑>)을 함락하고, 초나라 역대 왕들의 능역(陵域)이던 이릉(夷陵)을 불태워버렸다. 초나라는 허난[河南]의 진(陳:河南省 淮陽縣)으로 옮겨야 하였고, 뒤에 다시 수춘(壽春:安徽省 壽縣)으로 옮겼다. 진나라 군대는 양쯔강[揚子江]을 건너 다시 구이저우성[貴州省]의 동부와 후난성[湖南省]의 서부도 공격하였다. 이어서 장군 백기는 북쪽의 조(趙)나라를 공격하여, 장평(長平)의 싸움에서는 항복한 조나라의 군사 40만을 구덩이에 생매장하고 수도 한단(邯鄲)에 육박하였으나, 초(楚)나라와 위(魏)나라의 원군이 투입되어 포위망을 풀고 철수하였다. 이즈음 진나라는 서제(西帝), 제(齊)나라는 동제(東帝)라고 높여서 ‘황제’ 칭호를 쓰기도 하였으나 얼마 후 다시 왕호를 썼다. 소양왕이 위나라 사람 범수(范雎)를 등용한 뒤부터는 그의 건의에 따라 ‘연횡책’을 버리고 ‘원교근공(遠交近攻)’ 정책으로 전환하였다. 이로부터 진나라는 마지막 마무리 작전에 들어갔다. 이와 같은 진나라의 형세를 살핀 주왕(周王) 난(<赤+尸+又>)은 열국을 ‘합종’하여 진나라를 칠 계획을 세웠고, 이를 안 진나라는 주나라부터 공격을 시작하자 난왕은 30개의 성읍과 인구 3만을 바치고 항복함으로써 주나라는 멸망하였고, 7년 후에는 동주군(東周君)도 멸망하였다.



진의 통일

BC 247년에 즉위한 진나라 왕 정(政)은 어렸기 때문에 모태후(母太后)가 섭정했는데, 장성해서 친정(親政)을 시작하자 재상 여불위(呂不韋) 등을 제거하고 이사(李斯)와 같은 인재를 등용하였다. 그는 법가(法家)의 학자로서 이후부터 진나라 정치는 그의 의견에 따라 시행된다. 대외적으로는 여전히 ‘원교근공’ 정책을 써서, 진나라의 왕전(王<前+羽>) 등 장수들은 여러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어 BC 230년에는 먼저 한(韓)나라를 멸망시키고, 조(趙)·연(燕)·초(楚)·위(魏)·제(齊)의 순으로 6국을 통일하였다. 한나라가 멸망하고부터 제나라가 멸망하기까지는 불과 1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진왕 정은 황제가 되고, 이로부터 진나라는 황제가 죽은 뒤에 그 이름을 정하는 시호를 사용하지 않게 되어 그는 시황제(始皇帝)가 되고, 그 후의 황제는 이름 없이 2세·3세로 부르게 되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국가가 된 진나라는 군현제(郡縣制)를 실시하여 전국을 36개 군으로 하고 각종 통제정치를 단행, 획일적인 문화를 창조하였다. 이른바 중앙집권적 전제군주제가 완성된 것이다. 시황제는 다시 북쪽의 흉노를 쫓아내어 만리장성을 구축하고 남쪽은 광둥성[廣東省]·광시성[廣西省]에서 베트남 북부까지 정복하였다. 진나라의 위명은 해외에까지 뻗쳐, 중국의 다른 이름을 ‘支那(지나)·震旦(진단)’ 등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진(秦)이라는 음이 와전한 것이다. 그러나 시황제의 대외전쟁은 결국 국민의 부담이 되는 것이어서 만년에는 민심이 동요하자 극단적인 탄압정책이 시작되었다. 시황제가 죽은 뒤에는 2세 황제가 위에 올랐는데 환관인 조고(趙高)와 이사(李斯)의 불화로 조고가 이사를 죽이고 궁중의 권력을 장악했으며, 2세 황제도 살해하였다. 유군(幼君) 자영(子)이 진왕이 되어 조고를 처단했으나, 자영은 BC 207년 한중(漢中)에 들어온 유방(劉邦)에게 항복함으로써 시황제의 중국 통일 후 불과 3세, 15년 만에 진나라는 멸망하였다.


출전 : www.chinain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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