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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22 17:26:382099 
신국(申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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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申國)

《국어(國語)·주어(周語)》에 “제(齊)、허(許)、신(申)、여(呂)는 대강(大姜)에 유래되었다”고 했다. . 위소(韋昭)의 해설에 따르면 네 나라는 모두 강성(姜姓)이고 신나라는 강융(姜戎)이라고 했다. 일찍이 지금의 섬서성 寶雞眉縣과 그 이북 지방에 근거를 둔 제후국으로 오래 전부터 화하(華夏) 족과 서융(西戎)과의 사이에 섞여 살았다. 선주(先周) 때부터 희성(姬姓)의 주족(周族)들과 대를 이러 혼인관계를 맺었다. 주태왕(周太王) 고공단보(古公亶父), 왕계(王季), 문왕(文王)의 비 등 모두가 대강(大姜) 출신이었다. 서주 후기 신국은 계속해서 조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어 주왕실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아 주려왕 때 신계(申季)는 대신을 지냈다. 주려왕, 주선왕, 주유왕 모두 신국의 여인을 왕비로 맞이했다.

주이왕(周夷王), 주려왕(周厲王)의 폭정으로 쇠락해진 서주 왕조를 이은 주선왕(周宣王)은 윤길보(尹吉甫), 신백(申伯), 소호(召虎)등의 현인을 등용하여 국세를 회복하여 중흥을 이루었다. 주선왕은 이에 신백(申伯)을 사(謝)에 봉하여 남방의 초나라를 견제하도록 하고 주나라의 위세를 높이고자 빈번히 전쟁을 벌이다 재위36년(BC 792년)에는 서방의 우호세력인 강융(姜戎)을 갑자기 침략하여 한때 승리했지만 재위39년에 강융(姜戎)의 여러 나라들이 힘을 합하여 천무(千畝)에서 반격을 받아 대패하고 말았다. 사(謝)는 지금의 하넘성 남양시(南陽市) 당하현(唐河縣)으로 추정된다.

섬서성 미현에 봉해졌던 서신국(西申國)

황하 중류지역 일대에 흩어져 살던 숙제(叔齊)의 후손들이 후에 황하를 건너 지금의 섬서성 서단의 부풍(扶風)으로 이주했다가 주목왕(재위 전1022-975년)이 서쪽을 순행할 때 숙제의 자손들이 협조하여 공을 세웠음으로 후작의 작위를 받아 신후(申侯)라 칭해졌다. 역사상 이를 서신국이라고 부른다. 서신국의 도성은 지금의 섬서성 보계시(寶鷄市) 미현(眉縣)으로 후에 신융(申戎) 혹은 강씨지융(姜氏之戎) E등으로 불리웠다. 죽서기년(竹書紀年)의 기록에 따르면 서신후(西申侯)는 종주(宗周) 치하에서 서수(西陲)를 다스리면서 정치적인 기반을 닦아 주왕실과 대대로 혼인관계를 맺어 강대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한 군사를 갖추게 되었다. 이에 서주 말 주유왕(周幽王) 11년(전771년),태자의 자리에서 쫓겨난 희의구(姬宜臼)가 그의 모친과 함께 서신국 도망쳐 신후의 도움을 청했음으로 신후는 증국(鄫國) 및 견융(犬戎)과 연합하여 서주의 도성으로 진공하여 주유왕을 살해하여 서조왕주롤 멸했다. 그 신후는 실제 상 서신의 군주로 주나라와 왕도와 멀리 떨어져 있었던 남양의 신백(申伯)이 아니었다. 주환왕(周桓王) 희림(姬林) 16년 (전 704년) 진헌공(秦獻公)이 평양(平陽)으로 천도할 때 서신국은 진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그 땅은 병탄되었고 백성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왕족과 국인들은 나라 이름을 성씨로 삼아 신씨로 했다.

남양(南陽)의 남신국(南申國)

주성왕(周成王) 희송(姬誦)이 즉위하고 주공 희단이 정사를 보좌할 때(전1103-1081년), 백이(伯夷)의 후예들을 지금의 하남성 남양시 경내의 여(呂) 땅에 봉하고 신국을 세웠다. 작위는 백작으로써 그 군주를 신백으로 부르고 여(呂) 땅은 신국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이 신국은 남신국이다. 남신국의 군주들은 대를 이어 서주왕조의 경사(京司)를 지내고 주선왕 재위시 (전827-784년) 문무를 겸비한 신백이 주선왕을 보좌하여 주나라를 중흥시킨 공을 크게 세웠음으로 주선왕은 신백을 회하(淮河) 상류지역에 증봉하고 소백(召伯)에게 명하여 새로운 도읍인 사성(謝城)을 건설하게 했다. 당시 주선왕은 신백을 남쪽의 봉지로 보내면서 형만의 초를 방어하고 남양의 땅을 보위하라는 명을 내렸다. 신백은 사읍에 거처하면서 성을 쌓아 도읍으로 삼았다. 사읍은 지금의 하남성 남양시 완성(宛城)이다. 당시 서주의 현능한 재상 중산보(仲山甫)는 신백의 덕을 찬양하기 위해 숭고(崧高)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숭고는 시경의 대아에 실려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남신국은 춘추 때인 주장왕(周莊王) 9년(전688년)에 초나라의 대군을 이끌고 친정에 나선 초문왕에 의해 멸망하고 그 땅은 초나라에 병합되어 후에 초나라의 중원진출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신국의 귀족들과 국인들은 자신들의 성을 신(申)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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