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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7-11 14:57:504776 
제후국의 기원과 간개
운영자
일반


주요 제후국의 기원과 간개

(1). 희성제후국(姬姓諸侯國)


1. 주문왕의 아들들 (주무왕의 동모 형제들)















































차서


시봉자


국명


봉지

작위


기원과 간개)


멸망


장남


백읍고

伯邑考




주문왕(周文王)의 장자였으나 문왕의 12형제 중 무왕 발과 주공 단이 덕이 높고 재주가 뛰어났다. 주문왕이 두 사람을 좌우에 두고 자기를 보좌하게 하고 후에 그의 후사를 차자인 무왕 발을 세웠다. 문왕이 죽자 무왕이 즉위했을 때는 백읍고는 이미 죽고 없었다.



2남


무왕발

武王發



(周)


천자


상나라를 멸하고 주왕조를 세웠으나 8년 만에 죽었음으로 동생 주공단이 무왕의 어린 아들 성왕을 대신하여 섭정했다.


기원전 249년 진(秦)나라의 장양왕 에 의해


3남


주공단

周公旦




산동성 곡부시

曲阜市

후작


무왕에 의해 () 봉해진 주공단은 무왕이 죽어 어린 성왕을 대신하여 섭정(攝政) 행했기 때문에 봉지를 돌보지 못하고 자기의 장남인 백금(伯禽) 대신 보내어 다스리게 했다.


전국 기원전 256년에 초나라에 의해


4남


관숙선

管叔鮮




하남성

정주시


주무왕(周武王)이 은(殷)의 주왕(紂王)을 죽이고 은나라의 고토에 주왕의 아들인 무경(武庚) 녹보(綠父)를 봉하고 다스리게 하면서 그의 동생들인 관숙(管叔), 채숙(蔡叔), 곽숙(霍叔) 세 사람을 삼감(三監)에 임명하여 은나라를 감시하게 하였다. 무왕이 죽고 주나라의 정사를 주공단이 독단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관숙 등 삼감은 무경 녹보를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게 했다.


주공단에 의해 관숙은 피살되고 봉국은 폐지되었다.
















































관계


시봉자


국명


봉지


기원과 간개


멸망






소공(召公) 석(奭)의 협조로 은나라의 반란을 진압한 주공단은 관숙을 죽이고 채숙과 곽숙은 나라 밖으로 추방하였다.



5남


채숙탁蔡叔度




하남성

탑하시

漯河市


후작


주공단에 의해 나라 밖으로 추방당한 채숙(蔡叔)은 유랑 중에 죽고 그의 아들인 채호(蔡胡)가 그의 부친의 잘못을 뉘우치며 덕을 쌓고 선행을 행하였다. 주공단이 듣고 채호를 불러 노나라의 경사(卿士) 직을 맡겼다. 채호의 노력에 의해 노나라가 크게 다스려 지자 주공단이 그 공을 높이 사서 성왕에게 품하여 호를 채읍에 봉하고 채숙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채호가 채중(蔡仲)이다.


초소왕 42년 기원전 447년에 초나라에 의해 땅은 초나라의 군현이 되었다.


6남


조숙

진탁

曹叔

振鐸




하남성 정도시

定陶市

백작


주무왕의 동생 숙진탁이 봉해진 제후국으로 도읍은 지금의 산동성 있었던 도구(陶丘)였다.


기원전487년 송나라에 의해 병합되었다.


7남


성숙무成叔武




산동성

영양현

寧陽縣


산동성 곡부시 북 20키로의 영양현 동북에 있던 제후국이다. 노나라에 병합되어 삼환씨(三桓氏)가 세력을 잡았을 때 정도시(定陶市)에 맹손씨(孟孫氏)의 봉읍이 되었다.


기원전 408년 전국 때 노나라에 병합되었다.








































차서


시봉자


국명


봉지


기원과 간개


멸망


8남


곽숙처霍叔處




하남성 임여시

(臨汝市)


후작


은나라를 감시하기 위해 삼감(三監) 중의 한 명으로 봉해 졌으나 관숙(管叔)의 회유로 반란에 참가하였다가 실패로 돌아가자 주공단에 의해 나라 밖으로 추방당하여 유랑생활 끝에 죽었으나 나라는 그 후손들에게 계속 전해져 진헌공 때 당진에 병합되었다.


기원전 661년 당진의 헌공에 의해 병합.


9남


강숙봉康叔封




하남성

기현

淇縣


후작


은나라 고토의 땅을 주왕(紂王)의 장자인 무경 녹보에 맡겼으나 삼감의 부추김으로 반란을 일으키자 섭정을 행하던 주공단은 그 땅을 용(庸), 패(邶), 위(衛) 세 나라로 나누고 그 중 하나인 위(衛) 땅에 강숙을 봉했다. 전국시대 때 위(魏)나라의 속국으로 있다가 위원군(衛元君) 재위 때인 진시황 6년 기원전 241년에 진나라가 위(衛)나라의 도성인 조가(朝歌)를 함락시키고 그 땅에 동군(東郡)을 설치하자 위원군은 종족들을 데리고 서쪽으로 달아나 야왕성(野王城 : 지금의 산서성 심양현(沁陽縣) 소재)의 험지에 의지하여 명맥을 유지했다.


천하가 진시황에게 통일될 때까지 계속 제후국으로 존재하다가 진나라의 이세(二世) 황제 때인 기원전 209년에 이르러서야 나라가 폐지되고 진(秦)나라의 군현에 편입되었다.


10남


염계재

冉季載




하남성

평여

平與


주공단이 삼감의 란을 평정할 때 공을 세워 사공(司空)이 되었다가 후에 성왕에 의해 심(沈)에 봉해졌다.


춘추초기 인접국이었던 초나라에 의해 망했다.






2. 기타 희성제후국






















국명


시봉자


주왕실과의 관계


봉지


기원과 간개


멸망






정환공鄭桓公


희우

姬友


주선왕周宣王의 동모제同母弟


1. 섬서성 화현

華縣

부근


2. 하남성 신정시

新鄭市


백작


주선왕의 동모제로써 선왕에 의해 정에 봉해졌다. 처음의 봉지는 현 섬서성 화현 부근으로써 당시 호경과 가까운 곳이었다. 시봉자 정환공은 화현이 주도(周都)인 호경(鎬京)과 가까이 있어 이민족의 침략을 받을 것을 걱정하여 유왕에게 청하여 지금의 하남성 신정시 부근의 회(檜) 땅과 동괵(東虢)의 일부의 땅을 할양 받아 자기의 봉지를 옮기고 그곳의 이름을 신정(新鄭)이라 했다. 정환공은 주유왕을 위해 침입한 견융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정환공의 세자 굴돌(掘突)이 정나라 군사를 이끌고 와서 견융을 물리치고 주나라가 낙양으로 동천하는데 공을 세워 주나라의 경사(卿士)가 되었다. 후에 황하의 남안(南岸)에 있었던 동괵(東虢)을 공격하여 병합하고 그 땅을 경성(京城)이라 칭했다. 무공의 아들 장공의 시대에 이르러 중원의 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장공이 죽고 그의 아들들이 벌린 후계 싸움에 국력이 소모되어 중소제후국으로 전락하고 이어서 당진(唐晉)과 초(楚)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진 중원 쟁탈전에서 항상 정나라가 그 싸움의 중심이 되어 춘추전국 시대 대부분의 시기에 있어 전화가 끊일 때가 없었다.


전국시대에 이르러 기원전 375년 한(韓)나라에 병합되었다.
































국명


시봉자


주왕실

과의관계


봉지


기원과 간개


멸 망






소공

召公



주나라 창업공신 중의 한 명이다


북경

계현

(薊縣)


백작


주나라를 창건하는데 공헌을 세운 삼공(三公-太公, 周公, 召公)의 한 명인 소공이 봉해진 나라. 후에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하나가 되었다. 소공은 주무왕이 죽고 그의 아들 성왕이 나이가 어리자 주공과 함께 주나라를 동주와 서주로 나누어 맡아 다스리다가 성왕이 장성하자 주공과 함께 주나라의 통치권을 성왕에게 돌려주고 자기는 봉지로 돌아가서 연나라를 다스렸다. 서주초기 개국하여 진시황이 마지막으로 제나라를 멸해 중국을 통일하기 전인 기원전 222년 까지 존재했다.


기원전 226년 진나라의 침입으로 나라를 요동으로 옮겼다가 그 뒤를 추격한 진장 왕분에 의해 기원전 222년 연왕 희가 사로 잡힘으로 해서 완전히 망했다.


당진唐晉


주성왕

周成王의 동생


당숙우

唐叔虞


산서

강주

絳州


후작


성왕이 어린 나이에 그의 막내 동생 우(虞)와 함께 장난감 배를 만들어 물놀이를 할 때 장난삼아 우(虞)를 당(唐)에 봉한다고 글로 써서 배에 띄어 보냈다. 이것을 본 성왕의 신하 필공(畢公)이 군왕에게는 희언(戱言)이 없다 하면서 그 즉시 우를 당에 봉했다. 당(唐)에서 후에 반란이 일어나 당(唐)이라는 국명 대신에 진(晉)이라 부르게 되었다. 춘추초기 진문공이라는 영명한 군주가 등장하여 국력이 신장되어 춘추시대 전기간을 통해 초나라와 중원의 패권을 다투는 패자의 지위를 유지했다. 춘추 말 세력이 커진 한(韓), 위(魏), 조(趙) 삼가에 의해 삼분되었다. 당진이 삼분되는 계기가 된 진양성(晉陽城) 싸움이 벌어진 해인 기원전 453년을 전국시기의 시작으로 본다.


기원전 374년 위무후(魏武侯), 한애후(韓哀侯), 조경후(趙敬侯)가 삼가 분진 이후에도 제후국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당진국을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삼분하여 나누어 가짐으로 나라가 망했다.










































국명


주왕실

과의관계


시봉자


봉지


기원과 간개


멸 망




주문왕周文王의 동생 들


공작


동괵

괵숙


하남성 형양

滎陽


주문왕의 동생 숙(叔)이 봉해진 나라로 지금의 하남성 형양시(滎陽市) 동북에 있던 제후국이다.


기원전 767년 정무공(鄭武公)에 의해 멸망당하고 정나라 영토에 편입되어 그 도성은 경성(京城)으로 바뀌었다.


서괵

괵중


섬서성 보계시寶鷄市


주문왕의 동생 중(仲)이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보계시(寶鷄市) 부근에 봉해졌다.


서주가 망하자 동주를 따라 하남으로 이주하여 북괵이 되었다.


북괵


하남성 상양성上陽城


나라를 옮긴 후 영토를 지금의 하남성 삼문협시(三門陜市)에서 산서성 평륙(平陸)까지 넓혔다. 가도멸괵의 괵나라에 해당하는 나라이다.


기원전 655년 당진에게 멸망


소괵


섬서성 보계

寶鷄


하남성의 북괵으로 떠나가지 않은 서괵(西虢)의 잔존 세력이 구토에 세운 나라가 소괵(小虢)이다.


기원전 687년 섬진의 무공(武公)에 의해 멸망 당했다.
































국명


주왕실

과의관계


시봉자


봉지


기원과 간개


멸 망





주문왕의

백부


오태백

吳太伯


강소성

江蘇省

소주시

蘇州市


주나라 선조 태왕 고공단보(古公亶父)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었는데 장자가 오태백(吳太伯), 차자가 중옹(仲雍)이고 막내가 계력(季歷)이었다. 그 중 계력이 가장 덕이 높고 재주가 뛰어나 고공단보가 계력을 후계로 삼으러 했다. 태백과 중옹은 형만(荊蠻)으로 달아나 만이(蠻夷)의 습속으로 바꾸고 그들의 추장이 되었다. 태백이 죽자 후사가 없어 그의 동생 중옹이 뒤를 이었다. 태백 이후 19대인 수몽(壽夢)에 이르러 초나라의 신공(申公) 무신(巫臣)이 당진으로 망명했다가 다시 오 나라에 와서 중원의 용병술과 전차전을 전수하여 주었고 다시 무신의 아들 굴호용(屈狐庸)이 행인(行人)이라는 관직으로 오나라에 살면서 중원의 문물을 전했다. 오나라는 중원으로 강국으로 등장하였다.


손무와 오자서의 활약으로 초나라의 도성을 함락시켜 패권국이 되었으나 그 배후에서 일어난 월나라의 군주 구천에 의해 오왕 부차는 죽고 나라는 월나라에 의해 기원전 473년에 망했다.




주문왕의 숙부 우중의 후예


우중

(虞仲)


산서성

평륙현

(平陸縣)



공작


주나라를 창건한 주무왕이 태백과 중옹을 찾았으나 중옹(仲雍)의 자손 주장(周章)은 이미 스스로 오나라의 군주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생 우중(虞仲)을 불러 옛 하나라의 고도(古都)에 봉해 나라의 이름을 우(虞)라고 불렀다. 후에 당진(唐晉)의 헌공(獻公) 때 괵나라와 함께 멸망했다.


기원전 658년 괵나라와 함께 망하고 당진에 병합되었다.






(2). 비희성 제후국






















국명


책봉자


시봉자


봉지


기원과 간개


멸 망


섬진


陝秦


주효왕에 의해 부용이 되고 주평왕에 의해 백작에 봉해졌다. 과 주펴왕에 의해 진읍의 부용(附庸)으로 봉해졌다가 주평왕

周武王에 의해 백작의 작위를 받아 정식 제후가 되었다.


비자

非子와 진양공

秦襄公


영성

嬴姓


서견구

西犬丘

감숙성 예현

禮縣


1. 서주 중엽에 진족 부락의 수령이 되어 견구(犬丘)에 살았다.

2. 주효왕(周孝王) 때 지금의 감숙성 청수현(淸水縣) 진정(秦亭) 부근인 진읍(秦邑)에 처음으로 봉해졌다.

3. 견융이 서주를 침입하자 당시 부용국(附庸國)의 군주로 있던 진양공(秦襄公)이 군사를 이끌고 출동하여 견융을 물리치고 평왕이 즉위하는데 공을 세워 진백(秦伯)에 봉해지고 후에 주나라가 하남성 낙양(雒陽)으로 동천하자 주나라의 고토는 모두 섬진의 차지가 되어 서쪽의 강국이 되었다

4. 춘추 때 영공(寧公)이 지금의 섬서성 보계시 동남의 평양(平陽)으로 천도

5. 다시 덕공(德公) 때 지금의 섬서성 봉상현(鳳翔縣) 남인 옹(雍)으로 천도

6. 전국시대에 이르러 영공(靈公) 때 지금의 섬서성 경양시(涇陽市)인 경양(涇陽)으로 천도

7. 효공(孝公) 원년 기원전 361년 지금의 섬서성 임동현(臨潼縣) 동북의 역양(櫟陽)으로 천도.

8. 효공 12년 기원전 350년 함양(咸陽)으로 천도(遷都)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재위 12만인 기원전 209년 진시황이 죽자 진승과 오광이 반란을 일으키고 그 후속 군인 항우에 의해 기원전 206년에 항우에 의해 멸망당했다.
































국명


책봉자


시봉자


봉지


기원과 간개


멸 망




주무왕


태공

太公

여상

呂尙

강성

姜姓


산동성 임치시

臨淄市


후작


태공 여상(呂尙)이 주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창건한 공로로 태공의 출신지인 산동성 영구(營口)에 봉해졌다. 제환공 때에 이르러 관중의 부국강병책으로 인해 패권국이 되어 춘추시대 전 기간을 통해 강국으로 군림했다. 전국시대에 이르러 기원전 378년 전상(田常)이 제나라의 국권을 탈취하여 강성의 제나라를 대신하여 전씨의 제나라를 세웠다. 태공이 세운 강씨의 제나라를 강제, 전상이 세운 전씨의 제나라를 전제라 한다.


정권이 전씨로 바뀐 이후 전국시대 전기간을 통해 강국으로 군림하다가 기원전 221년 전국칠웅(戰國七雄) 중 제일 마지막으로 진나라에 복속되었다.




주무왕


미자개

微子開


자성

子姓


하남성

상구시 商丘市


주무왕이 은의 마지막 왕 주(紂) 왕을 죽이고 그 구토에 주왕의 형 무경 녹보를 봉하고 그 작위를 주왕실과 동격으로 하는 공으로 했다. 또한 무왕은 무경을 감시하기 위해 동생들을 삼감을 임명하여 은나라를 다스리게 했다. 그러나 무왕이 죽고 그의 아들은 성왕이 나이가 어린 관계로 무왕의 동생인 주공단이 국정을 전단하자 삼감(관숙, 채숙, 곽숙)이 그에 불만을 품고 무경 녹보를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게 하였다. 주공단은 무경 녹보의 반란을 평정하고 은나라 유민을 양분하여 일부는 그 구토인 위(衛)에 머물게 하고 대부분의 유민은 현 하남성 상구시로 이주시켜 그 수장에 주왕(紂王)의 서형인 미자개(微子開)를 봉해 은나라의 제사를 잇게 했다.


전국시대인 기원전 282년 걸송이라고 부르는 언왕이 폭정을 행하자 진초(秦楚)와 연합한 제민왕에 의해 멸망당하고 그 땅은 세 나라가 나누어 가졌다.
























국명


책봉자


시봉자


봉지


기원과 간개


멸 망




주성왕

(周成王)


웅역

(熊繹)

미성

(羋姓)


1.호북성 단양시

(丹陽市)

2.호북성 강릉시

3. 호북성

의성시(宜城市)인 약(鄀)

4.호북 강릉시

5.하남성

진현(陳縣)

6. 안휘성

거양

(巨陽)

7. 안휘성

수현

(壽縣)


자작


주성왕이 문왕, 무왕 때의 공신들의 자손들을 대거 기용하여 주나라의 정사를 일신시켰다. 그때 웅역도 기용되어 형만에 봉해지고 작위는 자작이었으나 그 봉해진 땅에 남작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성은 羋다. 초나라의 도성 이동사는 다음과 같다.

1. 초나라는 지금의 호북성 자귀시(秭歸市)인 단양(丹陽) 도읍을 정하고 개국했다.

2. 기원전 670년 경 초문왕(楚文王)에 의해 지금의 호북성 강릉시(江陵市)로 천도하고 그 이름을 영(郢)이라고 지었다.

3. 오자서(伍子胥)와 오왕 합려(闔閭)가 이끌던 오나라 군사들에게 의해 영(郢)이 폐허가 되자 은 초소왕(楚昭王)이 기원전 504년에 지금의 호북성 의성시(宜城市) 부근인 약(鄀)으로 천도하고 그 이름을 영(郢)이라고 불렀다. 후에 초소왕은 구도인 영(郢)을 재건하여 다시 그곳으로 도성을 옮겼다.

4. 주난왕(周赧王) 17년 기원전 278년 진장 백기(白起)의 침입으로 영(郢)이 점령당하자 초경양왕은 초나라의 잔존세력을 이끌고 진성(陳城)으로 나라를 옮겼다.


초나라는 수춘에서 진나라 왕전(王翦)의 공격으로 기원전 223년에 멸망했다가 진시황이 죽고 진나라가 분열되자 이곳에서 항우가 기병하여 유방과 자웅을 겨루었다. 항우본기에 나오는 강동자제 6000명이라는 말은 이곳 수춘 출신의 군사들을 말한다.
































국명


책봉자


시봉자


봉지


기원과 간개


멸 망






5. 초고열왕 10년 기원전 253년 초나라는 다시 도성을 陳城에서 지금의 안휘성 태화현(太和縣) 부근인 거양(巨陽)으로 옮겼다.

6. 고열왕 22년 기원 241년 초나라는 거양에서 다시 지금의 안휘성 수현(壽縣)인 수춘(壽春)으로 옮겼다.





주무왕


규만

(嬀滿)


하남성

진현

(陳縣)


후작


호공(胡公) 만(滿)은 우순(虞舜)의 자손으로 순이 평민의 신분이었을 때 당요(唐堯)가 그의 두 딸을 그에게 주어 규예(嬀汭)라는 곳에서 살게 했던 관계로 순의 후손들 성씨는 규씨가 되었다. 순이 죽자 천하는 우(禹)에게 넘어가 순의 아들 상균(商均)은 일 개 제후의 신분으로 살게 되었다. 하왕조 때 순의 제사는 끊기게 되어 은왕조에 이르게 되었다. 주무왕이 은의 주왕을 토벌하고 주나라를 세울 때 순의 후손 중 규만(嬀滿)이라는 사람을 찾아 진(陳)에 봉하고 순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이 규만이라는 사람이 호공(胡公)이다. 기원전 672년에 일어난 정변으로 진나라의 공자 경중(敬仲) 완(完)이 제나라로 망명하여 그 후손들이 전씨(田氏)로 성을 바꾸고 번성하다가 전화(田和)의 대에 이르러 태공의 후손들인 강씨를 몰아내고 전씨의 정권을 세웠다. 전화의 아들 전상(田常)이 제나라 국권을 빼앗아 제왕이 되었다.


기원전 479년 초나라에 의해 멸망 당했다.








































국명


책봉자


시봉자


봉지


기원(起源) 및 간개(簡介)


멸 망



(許)


요임금


허유

許由


하남성 등봉현

(登封縣)


남작


요임금 때 지방장관을 감찰하던 관직인 사악(四岳) 혹은 태악(太岳)을 지냈던 허유(許由)가 지금의 하남성 등봉시(登封市) 남쪽에 영수(潁水) 남안에 봉해진 제후국이다. 후에 지금의 하남성 허창시(許昌市)인 허(許) 땅으로 나라를 옮겼다. 이어서 하나라를 세운 우임금이 고도(皐陶) 후예들을 영(英), 육(六), 허(許) 등에 봉했다고 했으며, 그 중 허나라는 춘추 때는 정나라와 초나라의 압력으로 여러 번 그 도읍을 옮겨야만 했다. 기원전 576년 초공왕(楚共王) 10년 정나라의 위협으로 벗어나기 위해 지금의 하남성 섭현(葉縣) 서남의 섭(葉) 땅으로 옮겼다.


기원전 506년 초소왕(楚昭王) 10년 지금의 하남성 노산현(魯山縣) 남쪽의 용성(容城)으로 갔다가 전국시대 초에 초나라에 의해 멸망당했다.





주무왕


동루공

東樓公


하남성

기현(杞縣)

후작


주무왕(周武王)이 은주(殷紂)를 멸하고 하우(夏禹)의 자손인 동루공(東樓公)을 찾아내 지금의 하남성 기현(杞縣)인 옹구(雍丘)에 봉했다. 춘추 때는 지금의 산동성 안구현(安丘縣)인 순우(淳于)로 옮겼다.


기원전 445년 초나라에 의해 멸망당했다.




주무왕


현효(玄囂)의 장남


산동성

거현(莒縣)

자작


황제(黃帝)의 장남인 현호(소호(少昊))의 후손이 봉해진 나라.


기원전 431년 초나라에 의해 멸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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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05-03-11
[일반] 진문공부터 도공까지의 당진국 군주 계보표

진문공(晉文公) 이래 도공까지의 당진국 군주 계보도는 다음과 같다. ①문공(文公) 중이(重耳) : 재위 전 636-626 ②양공(襄公) 환(歡) : 재
양승국 05-03-08
[일반] 춘추 때 초나라 영윤 계보표

군주 영 윤 시호 이름 재위(전) 비 고 자 이름 비 고 성왕 (成王) 웅운 (熊惲) 672
양승국 05-02-25
[일반] 춘추 때 초나라의 왕계와 왕족 계보표

1. 춘추 때 초왕 계보표 주나라가 동천하여 동주시대가 열린 이래 초나라 군주의 계보표 ①약오(若敖) 웅의(熊儀) : 전790-764년 ②
양승국 05-02-24
[일반] 위(衛)

위(衛) 서주 초기 때 주무왕이 은(殷)나라를 멸하고 그 땅에 은나라 주왕(紂王)의 아들 무경(武庚) 녹보(綠父)를 봉하고 관숙 등의 동생을 삼감
양승국 04-12-01
[일반] 활국(滑國)

춘추 때 희성(姬姓)의 소 제후국으로 원래는 지금의 하남성 수현( 睢縣) 서북에 있었으나 후에 지금의 하남성 언사시(偃師市) 서남의 비(費)
양승국 04-11-05
[일반] 오(吳)

주나라 태왕 고공단보(古公亶父)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었다. 장자가 오태백(吳太伯), 차자가 중옹(仲雍)이고 막내가 계력(季歷)이다. 그 중 계력
양승국 04-10-18
[일반] 진(陳)

호공(胡公) 만(滿)은 우순(虞舜)의 자손으로 순이 평민의 신분이었을 때 당요(唐堯)가 그의 두 딸을 그에게 주어 규예(<女+爲>汭)라는 곳에서
양승국 04-08-06
[일반] 진(秦)나라의 도성 이동사

1. 서주 중엽에 진족 부락의 수령이 되어 견구(犬丘)에 살았다. 2. 주효왕(周孝王) 때 지금의 감숙성 청수현(淸水縣) 진정(秦亭) 부근인 진읍
양승국 04-07-21
[일반] 한(韓)

한나라의 약사 BC453년 한위조가 힘을 합쳐 당시 당진에서 가장 세력이 컷던 지(智)를 진양성 싸움에서 멸한 후에 당진국의 남은 땅을 삼분하여
양승국 0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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