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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7-02 09:42:012610 
논어15. 위영공(衛靈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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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15. 위영공(衛靈公)①

<1>

위영공이 공자에게 진법(陣法)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조두(俎豆)②의 일이라면 일찍이 들었지마는 군사의 일은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자 짐을 싸서 위나라를 떠났다. 진(陳)나라에 머물 때 양식이 떨어지고 따르는 자들은 병들어 능히 일어날 수 없었다. 자로가 공자를 보고 불평하며 말했다.

「군자도 역시 궁함이 있습니까?」

「군자는 원래 궁하나 소인이 궁하면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2>

공자가 자공을 보고 말씀하셨다.

「사(斯)야! 나라는 사람은 많이 배우고 모든 이치를 다 안다고 생각하느냐?」

자공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어찌 그렇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아니다. 나는 한 가지 이치로 모든 일을 통하는 사람이니라.」

<3>

공자가 자로를 보고 말했다.

「유(由)야, 덕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구나!」

<4>

「아무런 힘도 쓰지 않고 천하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아마도 순임금인가 한다. 그 분은 무슨 일을 하셨을까? 몸가짐을 공손히 하여 남쪽을 향해 앉아계셨을 뿐이었다.」

<5>

자장(子張)이 도를 행함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이 충성스럽고 미더우며 행실이 돈독하고 공경하면[忠信篤敬]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도 도를 행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지만 말이 충성스럽고 미덥지 못하며 행실이 도탑고 공경하지 못하면 비록 자기가 사는 마을인들 도가 행해지게 만들 수 있겠느냐? 이 말이 바로 서있으면 네 눈앞에서 삼삼하게 보이고, 수레를 탔을 때에는 수레가 멍에에 걸려있는 듯 보이게 하라. 그러면 네 뜻이 행해지리라! 」

자장이 이 말씀을 큰 띠에 적었다.

<6>

「곧구나, 사어(史魚)③여! 나라에 도가 있어도 화살처럼 곧으며 나라에 도가 없어도 화살처럼 곧도다. 군자로다, 거백옥(蘧伯玉④)이여!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을 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곧 물러가 숨도다.」

<7>

「더불어 말할 만한데 더불어 말을 하지 아니하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상대가 아님에도 함께 말을 나누게 되면 말을 잃게 된다. 그래서 지자는 사람도 잃지 않고 말도 잃지 않는다.

<8>

「뜻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해 인(仁)을 해치는 일을 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목숨을 바쳐서 인을 이루기도 한다.[殺身成仁]」

<9>

자공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장인이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먼저 연장부터 잘 정비해야 하듯이 나라에 있어서는 어진 대부를 섬기고 어진 선비와 벗해야 한다.」

<10>

안연이 나라에 대한 일을 물자 공자가 대답했다.

「하나라의 역법(曆法)을 쓰고, 은나라의 수레를 타며, 주나라의 면류관을 쓰고 소무(韶舞)의 악곡을 즐긴다. 정나라의 소리를 내치고 교언영색에 능한 자는 멀리해야 한다. 정나라의 음악은 도가 지나치고 교언영색을 일삼는 자는 위험하다.」

<11>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데에서 근심이 있음이라![人無遠慮 必有近憂]」

<12>

「이제 어찌 할 수 없구나! 나는 지금까지 예쁜 여인을 좋아하듯이 덕을 좋아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노라!」

<13>

「장문중(臧文仲)⑤은 직위를 도적질한 자이다. 유하혜(柳下惠)⑥가 어진 사람임을 알고도 더불어 조정에 서지 않았다.」

<14>

「몸을 스스로 두터이 하고 사람들을 박하게 책하면 곧 원망을 멀리할 수 있느니라!」

<15>

「어떻게 할까?라는 말만 되뇌이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나도 어찌할 수 없다.」

<16>

「여러 사람과 종일 지내면서도 오고가는 말이 의에 미치지 않고 보잘 것 없는 재주만을 자랑하는 자는 진정한 사람이 되기 어렵다.」

<17>

「의로써 바탕을 삼고 예로써 행하며 겸손으로써 태도를 나타내고 믿음으써 이루는 사람이 바로 군자이니라!」

<18>

「군자는 능한 재주가 없음을 병으로 여기지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않는다.」

<19>

「군자는 죽을 때까지 이름이 나지 않을까 걱정한다.」.

<20>

「군자는 자기의 몸을 위하여 덕행을 추구하고 소인은 남에게 명예를 구한다.」

<21>

「군자는 몸가짐을 씩씩하게 하되 다투지 않으며 무리와 화목하되 편당을 짓지 않는다.」

<22>

「군자는 말을 잘한다고 사람을 천거하거나 쓰지 않으며 또 좋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 말까지 물리치지는 않는다.」

<23>

자공이 물었다.

「한 마디 말로 종신토록 행할 만한 좌우명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셨다.

「아마도 서(恕)라는 글자가 아닌가 싶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했다.」

<24>

「내가 사람에 대해서 말하는데 누구를 헐뜯으며 누구를 칭찬 하겠는가? 만일 칭찬하는 말을 했다면 사실을 시험해 보고 했음이다. 이 백성들도 삼대의 도를 행하고 있음이라!」

<25>

「내가 사관이 기록하지 않고 비워두는 궐문(闕文)을 행하는 일은, 말을 가진 자가 남에게 빌려 주어 타게 하는 일과 같다고 여기고 있는데 그러나 지금은 없다.」

<26>

「교묘하게 꾸며낸 말은 덕을 어지럽힌다. 작은 일을 참지 못하면 큰 일이 도모할 수 없다.」

<27>

「여러 사람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며, 여러 사람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28>

「사람이 능히 도를 넓히지 도가 사람을 넓히지 않는다.」

<29>

「허물을 고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허물이다.」

<30>

「내가 일찍이 온종일 먹지 않으며 밤이 새도록 자지 않고 생각에 잠겨봤으나 아무런 이익이 없었다. 차라리 배우는 것만 못했다.」

<31>

「군자는 도를 추구하지 식록을 추구하지 않는다. 농사를 지어도 그 안에 굶주림이 그 안에 있을 수 있고 학문을 해도 녹봉이 그 안에 있을 수 있다. 군자는 도를 근심하지 가난을 근심하지 않는다.」

<32>

「지혜가 미치더라도 인을 잘 지키지 않으면 비록 얻어도 반드시 잃는다. 지혜가 미치고 인으로 능히 지키고도 위엄으로써 임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공경하지 않는다. 지혜가 미치어 인으로써 능히 지키며 위엄으로써 임한다 하더라도 예로써 움직이지 않는다면 아직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33>

「군자는 작은 일로 그의 진가를 알 수 없으나 큰일을 맡아 행할 수 있고 소인은 큰일을 맡을 수 없으나 작은 일은 잘 알아서 한다.」

<34>

「백성이 인을 멀리함은 물과 불보다 심하다. 물과 불은 밟다 죽은 사람은 보았으나 인을 밟아서 죽는 경우는 아직 보지못했다.」

<35>

「인을 행하는 데는 스승일지라도 양보하지 않는 법이다.」.

<36>

「군자는 바르고 곧아야하며 막무가내로 고집하지 말아야한다.」

<37>

「임금을 섬기되 맡은 바 일을 공경하고 녹봉은 뒤로 해야 한다.」

<38>

「가르침에는 차별이 있으면 안 된다.」

<39>

「도가 같지 아니하면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다.」

<40>

「말은 그 뜻을 전달하는 수단일 뿐이다.」

<41>

눈이 보이지 않은 악사 면(冕)이 공자를 뵙기 위해 섬돌에 다가오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섬돌이 앞에 있소.」

면이 방석이 깔려 있는 자리에 이르자 말씀하셨다.

「앞에 자리가 있소.」

면이 방석 위에 앉자 말씀하셨다.

「아무게는 저기에, 아무게는 여기에 있소!」

면이 방안에서 나가자 자장이 물었다.

「소경 악사와 대화를 하는 방법입니까?」

「그러하다. 진실로 악사를 돕는 방법이다.」

주석

①위영공(衛靈公) :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493년에 죽은 춘추 때 위(衛)나라 군주다. 희(姬) 성에 이름은 원(元)이고 양공(襄公)의 아들로 주경왕(周景王) 11년 기원전534년 군위에 올랐다. 그의 재위 기간 중 망명해 온 공자를 받아들여 후대했다. 만년에 그의 부인 남자(南子)와 태자 괴외(蒯聵)가 서로 틈이 벌어져 이윽고 괴외가 남자의 살해를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치고 송나라로 도망친 사건으로 위나라 공실에 내란이 발생했다. 재위 기간은42년이다.

②조두(俎豆) :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제기로 조(俎)는 주로 육류나 전 같은 음식을 담는 도마처럼 생긴 낮고 평평한 용기이고 두 는 굽이 높고 뚜껑있는 용기로 주로 과일이나 말린 고기 등을 담았다. 그리고 변(籩)과 등(登)의 제기는 두와 모습이 같았는데 두는 목제, 변은 대나무, 등은 와제(瓦製)다. 후에 제사를 받드는 의례로 뜻으로 변했다.

③사어(史魚) : 춘추 말 위(衛)나라의 사관(史官)이다. 자는 자어(子魚)이고 사추(史鰌)는 그의 별명이고 이름은 타(佗)다. 위영공 때 축사(祝史)로 임명되어 위나라의 사직 신에게 제사를 주관하는 일을 맡았다. 오나라의 계찰(季札)에 위나라를 방문했을 때 사어를 나라를 지탱하는 주석지신(柱石之臣)이라고 찬양했다. 위영공38년 기원전497년, 위나라의 공숙자(公叔子)가 잔치를 크게 준비하여 위영공을 접대하자 사어가 경계의 말을 했다. 「 그대는 부유하고 군주는 가난하니 장차 몸에 화가 달칠 것이다. 화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비록 부유하지만 거만하지 않은 자세로 신하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다. 」 그는 여러 번 위영공에게 거백옥(璩伯玉)을 천거했으나 듣지 않았다. 이윽고 사어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 가족들에게 「 내가 자주 거백옥의 현능함을 주군에게 천거했지만 등용되지 못했고 미자하(彌子瑕)의 불초함을 탄핵했지만 물러나게 할 수 없었다. 남의 신하된 몸으로 현능한 사람을 천거하지도, 불초한 사람을 물러가게 하지 못했으니 나는 죽어서 정당(正堂)에서 치상(治喪)을 받을 수 없다. 그러니 내가 죽으면 관에 넣지 말고 방안에 그대로 빈소를 만들어라! 나는 그것으로 마땅하다.」 라고 유언했다. 후에 문상을 온 위영공이 그의 시신을 정당에 모시지 않은 까닭을 묻자 상주인 아들은 사어의 유언을 그대로 고했다. 위영공은 크게 깨닫고 거백옥을 등용하여 높은 자리를 주고 미자하를 내친 후에 사어의 시신을 정당으로 모시게 하여 상례를 치르게 하고 자리를 떴다. 이 일이 시간(屍諫)과 사어병직(史魚秉直)이라는 성어의 어원이 되었다. 사어의 충직함을 공자는 다음과 같이 칭송했다. 「 충직한 사어여! 나라에 도가 있을 때도 화살처럼 곧았고 도가 없을 때도 화살처럼 곧았도다」

④거백옥(蘧伯玉) : 춘추 때 위나라 대부. 이름은 원(瑗)이고 자가 백옥(伯玉)이다. 위헌공(衛獻公) 18년 기원전559년 위헌공이 신하들의 반란으로 쫓겨나자 거백옥도 란을 피해 다른 나라로 도망쳤다. 후에 위나라에 돌아와 위상공(衛殤公), 위양공(衛襄公)을 모시며 어진 이름을 얻었다. 영공이 서자 사어(史魚)의 추천으로 다시 조정에 나와 영공의 총애를 받았다. 오나라의 계찰(季札)이 중원을 유람하기 위해 위나라에 들려 「 거백옥이야 말로 군자로다!「라고 말했다.」 공자와 교유하였고 공자 논어에 두 번 나온다. 처음은 헌문(獻文) 26편에 나오고 두 번 째는 위영공6편에 ‘ 군자로다, 거백옥은!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벼슬에 나아가고, 도가 없을 때는 거두어 물러나는 구나!(君子再擧伯玉. 邦有道 則仕. 邦無道則可卷而懷之)’

⑤장문중(臧文仲)/ 춘추 노희공(魯僖公: 재위 전660-627) 재위 시 태어났으나 정확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617년에 죽은 노나라의 정경이다. 성은 장손(臧孫)에 이름은 신(辰)이다. 문(文)은 시호이고 중(仲)은 자로써 장문중(臧文仲)이라고도 불렀다. 종법(宗法)과 행정에 밝아 노년에 노나라의 중신이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각 제후국들은 연대하여 서로 도와야한다고 역설했다. 제나라에 들어가 식량을 구입하여 기근으로 굶주리고 있던 노나라의 백성들을 구휼했다. 또한 당시의 패권국 당진국에 들어가 진문공에게 죄를 지어 억류당하고 있던 위성공(衛成公)의 석방을 주선하여 제후국들 간의 친선을 촉진시켰다. 점복(占卜)과 귀신의 일에 너무 집착하여 당시의 식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⑥ 유하혜(柳下惠) : 춘추 초기 노나라의 대부로써 전(展) 성에 이름은 획(獲)이다. 식읍(食邑)이 유하(柳下)이고 시호(諡號)가 혜(惠)다. 중국 춘추 시대 노(魯) 나라 때의 현자(賢者)다. 자는 금(禽) 혹은 계(季)이고 유하(柳下)에서 살았으므로 이것이 호가 되었으며, 문인들이 혜(惠)라는 시호를 올렸으므로 유하혜라고 했다. 노나라에서 형옥(刑獄)의 일을 관장하는 사사(士師) 벼슬을 살았다. 노희공(魯僖公) 26년 기원전634년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자 그는 사람을 제나라 진영으로 보내 제군을 물러나게 했다. 변설에 능하고 예절에 밝았음으로 이름이 높아 공자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또한 직도(直道)를 지켜 임금을 섬기고 진정한 화(和)를 이룬 사람이라고 해서 맹자에 의해 이윤(伊尹), 백이(伯夷), 공자와 함께4대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춘추 시대 대도(大盜)이며 악인(惡人)의 대명사로 쓰이는 도척(盜跖)은 그의 동생이다. 이에 형제간에 현인과 대악인이 있을 때 이들에 비유하였다. 논어18편 미자(微子)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유하혜는 사사(士師)였는데, 세 차례나 쫒겨났다. 사람들이 보고 말하기를' 다른 데로 가 버릴 수 없었던가요?' 하고 말하자, 그는'곧은 도리로 남을 섬기자면 어디에 간들 세 차례는 쫒겨나지 않겠소? 정도를 굽혀서 남을 섬길진대 하필이면 부모의 나라를 떠나야 한단 말이오?' 하였다. (柳下惠爲士師, 三黜. 人曰子未可以去乎. 曰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

또한 맹자 공손축장(公孫丑章)에 백이, 이윤, 공자와 함께 그의 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유하혜는 더러운 임금 섬기기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아니하였고, 작은 벼슬도 사양하지 아니하였다. 나아가서는 자기의 재주를 숨기지 않았고, 반드시 정당한 도로써 일했으며, 버림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았고, 곤궁에 빠져도 근심 안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사람과 함께 살면서도 너그럽게 대했고, 차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내 곁에서 벌거벗고 있다 한들 네가 어찌 나를 더럽힐 수가 있겠는가?'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유하혜의 기풍을 듣게 되면 비루한 사나이도 너그럽게 되고, 천박한 사나이도 후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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