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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8-19 17:06:517231 
설문해자(說文解字) 서(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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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해자 서




1. 한자의 기원을 밝힌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한자의 아류국 신세에 처한 우리로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글이 아니라는 오해로 한때 국민교육에서조차 외면했을 정도로 한자가 소홀히 취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구화되어가는 생활의 양태도 한자가 설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아예 한자를 써서는 안 된다고 목에 힘을 준다. 어려움은 이런 외적인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형으로부터 시작되는 한자의 특수성 때문에 동굴의 벽화와 초기의 문자는 구분하기조차 모호하며 또 고대에 존재한 것으로 이름만 전해오는 소위 녹서(鹿書), 우서(雨書), 화서(花書), 용서(龍書), 신전(神篆), 등의 문자들과 녹도문(鹿圖文), 가림다문(加臨多文), 설형문(楔形文), 쐐기문, 과두문(蝌蚪文) 등 그 흔적만 남아있는 문자들도 있다.

이렇게 산적한 문제들로 인해 한자의 기원을 명확히 밝힌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2. 한자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몇몇 설화가 전해온다.




첫째는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한자를 만들었다는 설화다.

“ 환웅천황의 신하였던 혁덕이 어느 날 무리와 더불어 사냥에 나갔다가 갑자기 튀어 나오는 한 마리의 암사슴을 보고 활을 당겨 쏘려고 했으나 둘러보는 사이에 암사슴의 종적을 노치고 말았다. 이에 사방을 수색하면서 산과 들을 지나 평평한 모래땅에 이르러 비로소 발자국을 발견하였는데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었으나 향한 곳은 확실하였다. 마침내 머리를 떨구고 침묵 끝에 다시 크게 깨닫고 말하기를 ‘ 기록으로 남기는 법은 다만 이것뿐이리라!’라고 하며 그날 사냥을 끝내고 돌아와 되풀이하여 다시 깊이 생각하고 널리 만물의 모양을 관찰하여 오래지 않아서 처음으로 문자를 만드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이를 태고 문자의 시작이라 한다. 그런데 후세에는 연대가 까마득히 흘러서 태고 문자는 다 사라져서 존재하지 않는다. ”




다음은 창힐조자설(倉頡造字說)이다.

황제의 사관이었던 창힐이 사냥터에서 짐승를 쫓다가 바닷가에 이르러 새와 짐승들이 남긴 발자국을 보고 마침내 문자를 만들었다. 그런데 창힐이 문자를 만들자 하늘에서 곡식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밤중에 귀신들이 울고 다니는 (天雨粟, 鬼夜哭)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곡식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것을 두고는 문자를 발명한 것을 하늘이 축하하여 그런 것이라고 해석했다.

귀신이 밤에 울고 다닌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두 가지로 해석했다. 사람이 문자를 발견하게 됨으로써 이제 더 이상 귀신을 존경하지도 섬기지도 않게 되었음으로 이를 서러워하여 울고 다녔다고 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鬼 자가 兎 와 비슷함으로 兎 자를 잘못 쓴 것으로 사람들이 문자를 쓰게 됨으로써 붓이 필요할 것이고 붓을 만들기 위해서 양질의 토끼털이 필요할 테니 털을 얻으려고 얼마나 많은 토끼가 목숨을 잃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처지가 슬퍼서 밤새도록 토끼들이 울고 다녔다고 풀이했다.

이는 그 내용이 진실 여부에 관계없이 인간이 문자를 만든 사건이 얼마나 경천동지할 일인지를 말해주는 일화라 하겠다.


첫 번째의 설화는 한단고기 태백일사 신시본기 제3권에 기록된 내용이며, 두 번째의 설화는 회남자(淮南子)에 기록된 내용으로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인용하는 설화다. 각각 주인공의 이름이 다를 뿐 그 내용은 비교적 유사함을 알 수 있는데 중국의 지식인들 가운데 이 설화가 진실인 것으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다만 한자는 존재하는 것이므로 언제나 그 기원이 화제에 오르고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창힐조자설과 같은 이야기라고 여길 뿐이다.




3. 현대적인 시각에서 한자의 기원을 논한다면 인간의 삶의 양태만큼이나 다양한 동기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한자의 상관관계를 살펴서 체계화한 것이 육서법(六書法)으로써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전주(轉注), 가차(假借)를 말하는데 보통 ‘한자 만드는 법’이라고 한다.

이들은 또 구분하여 상형(象形)과 지사(指事)를 본체자(本體字)라고 하고 그 외에는 본체자를 이용하여 믄든 용체자(用體字)라고도 부른다.

따라서 육서법에 으ㅟ하면 한자는 상형과 지사자로부터 시작되는 셈인데 사실은 상현자가 주를 이루는 까닭에 ‘한자는 상형문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4. 1900년대 초, 은허(殷墟)에서 갑골문이 대량으로 발견된 이래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는 현대 한문의 체계를 갖춘 최초의 시원자는 바로 갑골문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갑골문의 위세에 밀려 아직 제대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오제(五帝) 시기 금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갑골문보다도 시대가 앞선 고금문(古今文)이 있음이 밝혀졌다. 이 금문이 오제 시기의 원시상형체문자다.

갑골문과 금문의 선후관계에 대해서는 그 소재가 짐승의 뼈(거북이나 소의 뼈)와 금속(청동기)이라는 차이에서 오는 선입견 때문에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 그러나 금문 가운데서는 갑골문보다도 그 글자의 형태가 훨씬 원시적인 모양의 문자가 드러나면서 금문도 시다를 두고 여러 종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오제금문(五帝今文, 원시상형체 문자), 은주금문(殷周今文), 춘추금문(春秋今文) 등은 금문을 시대를 중심으로 구분하여 부르는 명칭인데, 이 가운데 오제금문은 은나라 때 주로 사용된 갑골문보다 무려 1000년이나 앞서 사용된 것으로 그 가운데에 ‘아버지 누구’라는 식의 사람의 이름자를 표시하는 금문이 있으므로 특히 ‘명씨금문(命氏今文)’이라 부르며 오제금문의 특징으로 삼는다.

명씨금문에 대해서는 곽말약(郭沫若)의 다음 글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 글자는 인명 이외에 다른 뜻이 없다.”

고대인들은 최초로 문자를 만들어 자신의 이름자로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제대로 지적한 사람이 바로 정당(鼎堂) 곽말약이다. 갑골문에 관한 탁월한 연구로 나진옥, 왕국유, 동작빈과 더불어 갑골사당(甲骨四堂)으로 꼽히는 대학자의 이 주장은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명씨금문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면서 한자가 사람의 이름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다시 관심을 끌게 되었고, 역사의 초기에 이름자를 만든 사람들은 고대 조선의 왕족으로써 대제사장의 직위를 가지고 하늘과 조상에 대한 제사를 주관했던 사람들임이 밝혀졌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자를 자랑스럽게 여겨 청동 제기나 농기구에 새겨 자손 대대로 전해지기를 희망했다.

원시상형체 금문과 갑골문의 회화성을 살리면서 한 단계발전한 글자가 대전(大篆)이며 대전을 조금 더 간편하게 정리한 문자가 진시황의 통일기에 완성된 소위 소전(小篆)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옛 상형체문자의 형체를 유지하던 한자는 그러나 진시황의 어사(御使)였던 정막(鄭邈)이 예서(隸書)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그 회화성을 잃고 단순한 형태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 예서를 또다시 모범이 될만한 서체로 정리하여 출현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로 해서(楷書)라 한다.

원시금문, 갑골문, 금문, 대전, 소전, 예서, 해서 등으로 변하는 한자의 이름이 말해주듯 한자는 사실 여러 차례의 가공을 겪게 되고 이 과정에서 본래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변화를 거듭하게 된다.

특히 예서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정막이라는 사람은 진나라에서 감공의 사무를 담당하는 관리였다. 그가 죄를 범하여 감옥에 갖히게 되었는데 무료한 시간을 면해볼 요량으로 이전에 관리로 근무할 때 보았던 한자들은 조금 더 쉽게 써보기를 반복했다. 긴 획은 짧게 줄이고 상하로 이어진 결구를 좌우로 정리하는 식으로 모양을 다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진시황에게 바쳐진 글자가 예서다.

그 내용을 통달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문자를 단순하게 정리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옥에서 무료함을 달래려고 그냥 정리해본 예서는 그 굴절이 얼마나 심했을 것인가. 지금의 한자와 한자의 시원자가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또한 이에서 설명이 될 수 있다.


5. 하늘을 나는 날짐승을 통칭 새라고 부르는데 하늘과 땅 사이를 자류롭게 왕래할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새(사이)는 또 다른 말로 금(禽)이라고도 한다. 서로 다정한 사이가 깨지면 ‘금이 갔다’라고 한다. 이 때의 금은 사이가 생겼다는 말이다. 그래서 새롤 또 금이라고 한다. 금수(禽獸)는 날짐승과 들짐승을 부르는 말이다.

금(禽)은 또한 금(金)이다. 금은 또 쇠다. 쇠는 다시 우리말 사이다. 또 새는 해(太陽)를 말하기도 함으로 태양 속에 산다는 새 삼족오(三足烏)의 이야기는 음운학적으로도 풀이가 가능한 이야기다. 어린시절 형을 성이라고 불렀던 기억을 되살려보면 ㅎ 과 ㅅ 의 상관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새는 또 신(新)이다. 해는 매일 매일 목욕을 하고 다시 올라오기 때문에 해는 노상 새로울 수밖에 없다. 새(鳥, 隹, 또는 禽)와 사이(間) 해(太陽)와 신(新), 그리고 쇠가 서로 의미나 음가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관계에 대한 이해가 한자를 공부하는데 필요한 선결지식이다. 고대인들이 문자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음이 같으면 서로 빌려다 쓰거나 의미가 깥으면 또 같이 통용하였다.

이렇게 우리말과 한자는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발전해왔다. 한자는 중국글이고 한글만이 우리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역사의 무지에서 오는 지독한 편견이다. 원시상형체문자를 해석하는 데에는 오히려 우리의 토속적인 말이 진가를 바뤼한다. 아니 우리말이 아니고는 한자의 본뜻을 도저히 풀어낼 수 없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한글과 한자를 동시에 창제한 우수한 문화민족의 후예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일만 년의 한민족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단순히 그 시대가 오랜 것을 존중해서가 아니다. 그 안에는 금싸라기 같은 소중한 문화유산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6. 우리나라에서 금문을 거론할 때는 사전에 두 분 선생님에 대해서 소개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 분은 한족 출신의 소설가 낙빈기(駱賓基 : 본명 장박군(張璞君) 선생이고 도 한 분은 소남자(召南子) 김재섭(金載燮) 선생이다.

낙빈기 선생은 인문주의의 존재가 의심되는 제도적 한계 속에서도 고대 금문에 대한 연구를 성취하여 금문신고(今文新攷)를 펴냄으로써 한자문화권에서 통용되고 있는 한자의 원시상형문을 읽어낼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셨다. 이로써 비로소 동양의 고전처럼 되어있는 전적들을 비판할 수 있게 되었으며 마침내 신화나 전설처럼 전해지던 동양의 고대사 즉 삼황오제의 이야기가 실재한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하였다.




소남자 김재섭 선생은, 식민사관이 팽배한 척박한 한민족학의 풍토속에서 일본인들이 왜곡하여 마침내 신화의 세계로 꾸며버린 고대조선 찾기를 염원하던 중 우연히 한 서점에서 낙빈기 선생이 저술한 금문신고를 접하고 금문 공부에 몰두하셨다.

금문에 대한 연구가 일정 궤도에 오르자 상호 서신교환과 방문토론을 통하여 오제시기가 곧 고대조선 시기였음을 주장하셨고, 낙빈기 선생도 이를 인정함으로써 고대조선의 실체가 마침내 새 빛을 보개 되었다.

이후 서울의 인사동에 소재한 (사) 한배달 강의실에서 금문강의와 기고를 통하여 금문의 보급에 힘을 기울이셨다.


낙빈기 선생에 이어 소남자 깁재섭 선생이 금문 연구에 참여하게 되면서 원시상형체금문 연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우리말이 금문을 읽어내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론 두 분 석학의 높은 안목이 이뤄낸 쾌거일 뿐만 아니라 금문과 관련하여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말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문이 출토되는 지역의 한계, 기존 학계의 두터운 인식의 벽, 기존 민족사학의 고대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 등으로 인해 아직 금문의 위력은 미미하다.




현재까지 밝혀진 굼문의 수는 9천여 자로 알려져 있으나 이 가운데 풀이가 가능한 글자는 이제 겨우 1천여 자게 불과하다.

이것은 굼문의 연구가 이제 시작의 단계에 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이 멀다는 것과 새로운 가능서이 무궁함을 동시에 말해준다. 따라서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을 가지고 동양 고대사 전체를 재단하는 일은 성급하고도 위험한 일이다.

현재로써는 다만 조심스럽게 앞서 언급한 두 분 선생님이 밝혀 놓으신 문자의 시원을 살피는 정도에 머물 것이다.

물론 배경으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하여 언급할 수 밖에 없겠지만 이 부분은 정말 끊임없는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에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기 위하여 아직은 가급적 가벽게 여겨주기를 희망한다.




7. 문자는 역사나 사상, 문화, 이념을 담아 놓은 그릇인 까닭에 한자를 배우다보면 그 준자에 관련된 인물 즉 문자 탄생의 주체와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으며 그 준자에 녹아있는 그 시대의 역사를 저절로 알게 되는 이롬이 있다. 그뿐 아니다. 글자 하나하나를 형상과 음과 뜻을 따라 접근해 가다보면 어느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더투어운 인식의 벽과 그 벽으로부터 저절로 자유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한자의 연구를 통해 연혼이 자유로워지는 뜻밖의 독특한 체험이며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관념의 벽을 넘어 자유인, 자연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러운 기쁨이다.

이것은 한자의 연구를 통하여 단순히 한자의 뿌리나 고대역사를 알게 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식의 주체인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의마하는 것이며 기존의 학문이 이룩해 놓은 거짓의 틀을 극복하고 안간 본연의 가치를 재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우리가 고전을 통하여 접할 수 있었던 동양 사회의 문화에 다소간 가공되고 왜곡된 부분이 포함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원재로를 통하여 우리의 고대사와 직접 대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 나를 감싸고 있는 상반된 여러 제도와 관념, 문화, 그리고 사상의 실상을 직접 들여다보고 비교 비판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학문의 즐거움과 깨달음의 기쁨을 독자들께서 직접 체험해 보기를 희망한다. 모두 고대문자를 배우면서 덤으로 얻게 되는 기쁨이다.







2005년 7월

환희(桓羲), 조옥구(趙玉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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